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산 전투 (문단 편집) == 결과 == 이 전투의 참패로 큰 충격을 받은 명나라 조정은 청나라에게 강화를 제의했다. 청태종은 계속 공격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명나라에게 유리한 강화조약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첫째, 명나라는 매년 금 10,000냥과 은 1,000,000냥을 청나라에게 주고, 청나라는 매년 인삼 1,000근과 담비가죽 1,000장을 명나라에 준다. 둘째, 쌍방은 반역자와 도망자를 송환한다. 셋째, 양국의 국경을 정하고[* 청나라를 [[국가]]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또한 연산(連山)에서 호시(互市)한다.|| 이때, 명나라는 이자성의 대반란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고 [[숭정제]]는 비밀리에 병부상서인 진신갑에게 전권을 준 후 담판 합의를 지시하여 신속히 강화를 맺고 청군의 힘을 빌려 이자성을 평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조정 내에서 이 비밀이 누설[* 진신갑이 스스로 누설했을 가능성이 높다. 청나라와 강화를 맺을 경우 본인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어 정치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걸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되는 바람에 [[숭정제]]는 책임을 진신갑에게 돌려 그를 사형에 처해 명·청 사이의 화의가 깨졌다. 청태종은 화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재차 명나라에 대하여 압력을 가하여 계주(薊州)를 점령하고, 경기 남쪽까지 깊숙이 들어와 산동으로 돌아서 80여개 성을 약탈하고 경기 지방을 경유하여 청나라의 수도인 [[선양시|선양]]으로 회군했다. 송산 전투의 패전은 가뜩이나 망하고 있었던 명나라의 운명에 치명타를 날렸다. 우선 명나라의 정예병이 소멸되어 더이상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수 없게 되었고, 총사령관인 [[홍승주]] 등 많은 장군들이 항복하거나 전사하면서 명나라에서는 유능한 장수의 씨가 거의 말라 버렸다. 뿐만 아니라 홍승주는 청나라가 입관에 성공한 뒤 많은 명나라의 장수들을 설득하여 청나라에 귀순시키는 역할을 했고, 나중에 많은 명나라의 장수들이 청나라로 귀순했다. 한편 [[1627년]] 명나라의 [[하남]]과 [[섬서]] 지역에서는 그동안 누적되어온 명나라 내부 체제의 문제점들[* 세금 폭증, 농민들의 유민화(化), 농민 반란, 북로남왜로 대변되는 이민족의 침략, 부정부패의 만연, [[명 4대 암군]].]과 결정적으로 이쯤에 발생한 기후 변화, 즉 소빙하기로 나타난 대기근으로 인해 민생이 파탄났으며 결국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이자성]]을 위시로 한 농민 반란 세력은 한때 세력을 떨쳤지만 1630년대 중반 홍승주, 손전정, 양사창 등이 이끄는 관군에게 진압되었다. 그러나 이자성의 무리는 수십 명만이 살아남아 산중에 은신하며 재기의 기회를 노렸고, 명나라의 주력군이 송산 전투에서 소멸되어 버리자 기회를 잡은 이들은 하남으로 이동하여 세를 모아 재궐기했다. 예전에 투항했거나 도망친 부하들이 다시 이자성 주위로 결집하고 새로운 유민들, 탈영한 병사들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이자성의 세력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기하는데 성공했고, 이들은 [[파죽지세]]로 쇠약해진 관군을 연파했다. 결국 1644년 이자성의 반란군은 베이징을 점령하고 명나라를 멸망시켰다. 송산 전투의 결과는 조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선의 [[임경업]]은 병자호란 이후로도 명나라와 내통하여 도움을 주고 있었는데, 홍승주가 청나라에 투항하면서 임경업과 주고 받았던 그간의 서찰들이 모두 청나라에게 전해졌던 것이다. 일찍부터 임경업을 의심하고 있었으나 물증이 없었던 청나라는 [[잡았다 요놈|확증을 잡게 되자]] 조선에 임경업과 [[최명길(조선)|최명길]] 등을 압송해줄 것을 요청했다. 임경업은 체포되기 전에 탈출하여 명나라로 [[망명]]해 명나라의 장수가 되었지만 청나라가 중국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포로가 되어 청나라로 압송되었다. 이후 임경업은 조선으로 귀환했지만 [[심기원]]의 옥사에 관련되어 죽음을 당했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최명길은 스스로 모든 책임을 혼자 껴안고 청나라에 끌려가서 고초를 당했는데, 이후 최명길의 당당한 태도에 감탄한 청태종은 최명길을 풀어주었고, 그는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